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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le My Belle, 완연한 여름이 오기 전, 집에만 머물고 있던 나의 일상 속에 고양이 한 마리가 침투했다. 회갈색의 얼룩무늬가 꽤 대칭을 이루고 있는 모습의 거세한 성묘였다. 알 수 없는 무늬 사이로 드러난 새하얀 목덜미와 가슴팍은 마치 풍성한 모피를 두르고 있는 것 같이 우아하게 빛나고 있었다. 곧게 뻗은 네 다리와 솜방망이처럼 도톰하게 솟아오른 네 발로는 흰 장화를 신겨놓은 듯한 인상을 풍겨 왔다. 시시때때로 유연하게 일렁이는 길다란 꼬리는 검은색과 회갈색이 일정한 간격으로 교차해가며 스트라이프 무늬를 그려냈다. 보는 각도와 시선에 따라 검은고양이, 혹은 흰 고양이, 또는 신비로운 얼룩무늬로 뒤덮인 고양이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
진정한 후렌치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 'French-Fries'라면, 감히 나의 소울푸드라고 운을 띄어본다. 그 이름에서 풍기듯 프랑스, 벨기에로부터(프랑스와 벨기에 사이에서 프렌치프라이를 두고 원조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래된 감자 조리법을 후렌치 후라이라 명명하게 되었다만, 이토록 광범위한 인지도를 얻게 된 것은 다국적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의 영향이 매우 컸을 것이다. 나는 바로 그 다국적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중 하나인 맥도날드사의 후렌치 후라이를 청소년기의 자양분으로 삼아 왔다. 후렌치 후라이를 먹기 위해 하루가 머다 하고 맥도날드로 달려가 가장 싼 치즈버거 세트를 주문하곤 했으니. 당시에는 밀크셰이크로 교환이 가능했던 때라 치즈버거+밀크셰이크+후렌치 후라이+마요네즈의 조합으로 천국을 맛봤다고 할까. 영화와 음악, 패션잡지, 어려..
Everday is Like Sunday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홍대 거리는 마이너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천국같은 곳이었다. 요란한 패션의 펑크족, 개성 충만한 예술가들, 왠지 멜랑콜리해 보이는 젊은이들로 가득차 있던 거리. 소위 Bripop-invasion이라 일컬어지는 영국발 팝 음악이 홍대 구석구석을 점령했던 것도 그 당시다. 흠모하는 뮤지션들의 밴드명을 간판으로 내건 펍들이 상가 건물 구석 구석에 둥지를 틀고 방황하는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던. Pub, The Smiths.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미장센을 상기시키는 인테리어. 음침한 조명아래 놓여있던 당구대. 스타일리시한 큐대와 당구공을 배경으로 서서히 퍼져가던 담배 연기. 어두운 조명 사이로 희미하게 비쳐 오던 모리세이와 밴드의 흑백사진들. 칵테일을 알지 못하던 시절의 고등학..
나의 작은 정원 태양빛을 무한히 머금은 시간 속에 머무르고 있을 때면, 알 수 없는 질투심과 함께 방광염에 걸린 고양이마냥 어쩔 줄 몰라하곤 한다. 비록 자외선의 유해성을 염려하는 나 자신은 태양의 직사광에서 한 발치 떨어져 몸을 웅크리고 있다만. 우주의 암흑물질을 뚫고 기적적으로 이 푸른 행성의 대지로 내리쬐는 빛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광합성이 가능한 식물. 그 다음으로는 고양이. 그 다음엔 젖은 빨래감. 그리고, 포토그래퍼의 눈. 그 아래로 비등비등하게 태양빛을 그리워하는 나의 피부, 습기로 인해 눅눅해진 세간 살이 등등. 개량 한옥에는 으레 타일로 마감한 마당의 화장실 공간이 딸려 있다. 그리고 계단으로 연결된 화장실 윗 공간을 활용해 옥상을 가꾸곤 한다. 용마루를 기준으로 처마 끝..
In a Small Kitchen 한국의 전통 민간 신앙에는 집을 수호하는 가신家神이 등장한다. 성주, 삼신, 조왕 등의 가신은 가족의 번창을 돕고 액운으로부터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 중, 부엌신에 해당하는 조왕은 부녀자들이 부엌에서 섬기던 신으로 음식이 만들어지는 부엌이라는 공간을 정결하고 부정이 없도록 관장하고 있다. 식민 피지배와 전쟁을 겪으며 전통 문화와의 급격한 단절을 경험한 한국의 근현대 사회는 이러한 민간신앙의 의미마저 퇴색되어 왔다. 나 조차도 어렵사리 후사를 본 아무개씨를 두고서 사람들이 수군거릴 때, 삼신할매의 공을 치사하는 대화 정도로 민간신앙 속의 등장인물을 가늠했을 뿐. 그렇게 싱크대와 가스렌지, 환풍구가 하나로 연결된 현대식 조리대의 주방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을 당연한 듯 섭취하며 현대인으로써의 ..
ABOUT 1. something about Writer, Jang 어렸을 적 부터 입이 짧아 먹을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다.그럼에도 먹을 복은 타고 났는지 식탐을 갖고 미식을 즐기는 주변인이 늘 곁에 있어 왔다.태생적으로 요리는 바느질 다음으로 거부해 왔다.어쩌다 보니 레스토랑을 전전하며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꽤나 오래 이어온 경험치가 쌓여 왔는데.매끼니를 집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매일 정성스레 손수 밥상을 차리던 어머니가 오버랩 되기 시작했다.이것이 과연 어찌할 수 없는 고귀한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먹는다.공간에 대한 집착이 강한 탓에 주방을 나만의 인테리어로 가꾸고 난 뒤, 요리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기 좋게 프리젠테이션을 도와주는 포토그래퍼, 김진호의 예술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