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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포르노그라피

미셸을 위한 시

 

 

 아메리칸 숏헤어는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건너온 털이 짧은 고양이를 일컫는 말이다. 이 고양이들의 역사는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고-베스부치의 오해와 우연으로 빚어진 '아메리카'대륙으로 건너올 때 함께 데려온 것으로 시작된다. 물론, 그보다 훨씬 이전에 도처에 존재하였을 고양이들이지만, 짧은 털을 가진 짙은 얼룩무늬의 고양이가 '아메리칸 숏헤어'라는 이름을 명명받기 까지는 대서양을 뚫고 수천 마일을 건너와 작은 네 발로 미지의 땅을 디딘 최초 아메리칸 숏헤어의 노고가 있을 것이다.

 

 

 

2011년 3월 즈음, 미셸은 세단을 타고 전 주인의 품에 안겨 이곳 한옥집으로 이사를 왔다. 화장실과 사료그릇으로 쓰던 락앤락 반찬통, 곰돌이가 그려진 물그릇, 그리고 두툼한 갈색 발수건 한 장을 갖고서(미셸이 이 발수건을 특별히 좋아한다고 하여). 고양이의 소박한 세간에는 털 단장용 빗이나 샴푸, 비상용 약품 혹은 통조림이나 육포 같은 간식은 고사하고 갖고 놀던 장난감조차 하나 없었다. 오직 사료와 배변통만을 들고 찾아든 미셸이 어떻게 측은지심을 자아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주인과 작별을 고하고 구석에 몸을 숨긴 이 외톨이를 바라보며 마음 한 구석이 짠해 오기 시작했던 것 같다.

 

고양이를 받을 때 너무 정신이 없었던지 그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부모와 형제는 어떻게 되는지도 물어볼 겨를이 없었던 게, 아직도 미셸이 태어난 날이 언제인지 모른다(임의로 5월 5일을 생일로 정해 오고 있음).

 

미셸은 전에 함께 지내오던 자신의 집사이자, 나의 지인이 떠나자마자 구석으로 몸을 감추고 식음을 전폐해 버렸다. 어디서 주워 들은 잡지식을 십분 활용해 아무리 눈동자를 마주 하고 깜빡여 보아도, 내가 눈을 떴을 때 나타난 것은  고양이의 깜빡이는 그윽한 눈이 아니라, 날카로운 발톱을 세운 맹수의 앞발이었다.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던 미셸은 모두 외출을 하고 집에 아무도 없을  때 함께 온 사료푸대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그렇게 미셸은 이틀 정도는 구석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날이 밝은 다음 날, 소파 한가운데의 쿠션 아래 맹수 한 마리가  수줍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새초롬한 눈동자로...어떻게 들어갔니...?

 

 

 

그 후로, 미셸은 저 소파를 자신의 분신마냥 여기는  듯하여, (그러고 보니 저 소파또한 아메리칸 빈티지, 고향냄새가 나나...?) 낡고 닳았음에도 처분할 생각은 꿈에도 그리지 못하고 미셸의 편의를 위하여 그 자리에 늘 놓여 있다.

 

 

그렇다면 미셸은 누구일까?

 

 

티끌 한 점 없는 내 마음 속의 영원한 빛, Michel Gondry?

독창적 사유를 통해 현대 지성계 석학의 자리를  어김없이 지키고 있는 Miche Foucault?

영원한 나의 여신, 나의 사랑 Beatles의 My belle Michell?

낙서 한 장으로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Jean Michel Basquiat?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미셸 공드리가 되었다가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미셸 푸코가 되기도 하며

비틀즈를 듣는 사람에겐 미셸, 마이 벨르가

반항적 기질을 가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에게는 미셸 바스키아가 되기도.

 

어려운 발음을 미처 알아듣지 못한 사람에게는 '매실'이가 되기도 하는

 

 

미셸은 유연한 트랜스포머

요가 퍼포머들의 영원한 워너비

 

 

사실은 내 영감의 원천

 

 


 

여담으로, 미셸은 이 전 집사에 의해 '미셸 푸코'의 미셸로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미셸을 들일 당시, 영상 작업을 해 오던 후배의 추천으로 이번에는 '미셸 공드리'가 될 뻔 하다가 이 조차도  무의미해진 것이 미셸은 그저 나의 미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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