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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uk magazine : Vol.8 _THE RECIPE OF HOME

 

집 안, 그 중에서도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을 통해 다양한 일상의 감각을 깨우고, 계절의 변화를 발견하며 살아간다고 들었어요. 

 

오래된 한옥을 개조해 살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어요. 이곳에서 생활하며 느끼고, 경험한 삶의 모습을 저는 글로, 남편은 사진으로 기록해 <도시생활자의 식탁>, <지금 여기에 잘 살고 있습니다> 두 권으로 펴냈고요. 부엌도 손수 수리하고 가꿨으니 애정이 갈 수밖에요. 저절로 요리가 하고싶어지고, 요리하는 행위 자체의 힘에 대해서도 많이 깨달았어요. 신선한 제철 식자재를 선별하고, 상상하는 맛을 실현하기 위해 감각을 곤두세우고, 심혈을 기울여 접시에 담는 것까지. 요리는 일상과 가장 가까운 창작 행위에요. 결과물은 먹고 나면 사라져버리지만, 맛의 감각은 우리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오래도록 영향을 미치겠죠. 

 

과거의 흔적에 작가님의 취향과 시간을 덧입히면서 부엌의 역사도 새로 쓰는 셈이네요. 

 

이 집은 1930년대 지어진 도심 주거형 개량 한옥이에요. 부엌엔 아직 과거의 자취가 남아 있어요. 선반 아래와 기둥 곳곳에 과거 다락을 세울 때 설치한 지지대의 흔적같은 거요. 과거에는 부엌에 바닥을 깊이 파서 아궁이를 놓았는데, 그 위로 다락을 설치해 공간 활용도를 높였던 거죠. 지금은 아궁이 자리 모두 메우고 다락도 철거했지만, 닳고 닳은 그 흔적을 보고 있노라면 장작 때는 냄새와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감싸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혀요. 이곳에 살았던 과거 사람들의 일상이 지금의 제 모습과 겹쳐 파노라마처럼 스쳐요. 

 

'아롱사태 버섯전골'은 어떤 의미가 있는 요리인가요?

 

제 고향에서는 겨울마다 두툼한 소고기 덩어리와 무, 토란대 등 신선한 제철 채소를 가마솥에 넣고 푹 곤 고깃국으로 몸을 보양하곤 했어요. 뭉근하게 끓인 부드러운 국물로 몸을 데우는 게 새해를 맞이하는 의식이었죠. 어린 시절 먹었던 소박한 고깃국의 기억을 떠올리며, 저만의 방식으로 조금 더 세련되게 전골로 만들어보았습니다. 아롱사태의 결이 잘 보이도록 통째 썰어 그 아름다움이 돋보이게 했어요. 그리고 어머니의 방식대로 해물 육수를 사용했고요. 해산물을 우린 육수가 고기의 잡내를 잡아주면서 맛의 조화를 끌어내거든요. 

 

삶 속에 가족과 음식에 대한 유년 시절의 추억이 크게 자리하고 있는 듯합니다. 지금까지 또렷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있나요?

 

저의 할아버지는 굉장히 과묵한 편이셨어요. 그런데 하루는 상에 단정하게 썬 김치가 오른 것을 보시고 "김치에는 칼 대는게 아니다"라며 한 말씀 하셨죠. 이제는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아요. 김치를 토막 내면 밑동부터 이파리까지 이어진 줄기가 단절되어버리잖아요. 배추 본연의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김치는 죽죽 찢어 먹어야 하는 거죠. 

 

그런 기억들 때문일까요? 삶의 본질에 대한 고민도 깊은 거 같아요. 음식을 통해 한국인의 뿌리를 찾아가는 일을 계속하고 있고요. 

 

때로는 '전통'이란 말 자체가 위압감을 주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의 나도 언젠가는 그 전통의 일부가 되잖아요. 전통을 일상에 녹이며 살아가는 일이 삶을 한층 입체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 매개의 중심에는 음식이 자리해 있고요. 어머니의 어머니에게 손에서 손으로 전해 내려온 맛의 기억요. 그게 왜 중요한지는 사실 아직은 모르겠어요. 그냥 본능인 거 같아요. 맛의 기억에서 오는 정서적 안정감이 정말 크거든요. 

 

요리와 음식에 대해 풀어낸 글에서 세상을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아름다움이 느껴져요. 보현 님의 삶과 의식에서 중심이 되는 가치에는 또 무엇이 있나요? 

 

유년 시절 문학에 푹 빠져 상상력과 감수성을 키웠어요. 그 시간을 토대로 어른이 된 지금은 자연에서 많은 것을 얻어요.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태양의 각도, 공기의 온도와 질감, 지붕 위를 호령하며 작은 발자국을 남기는 고양이들까지. 또한 철마다 어떤 재료가 나는지를 기억하려고 해요. 절기에 따라 자란 제철 음식은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살아가게 하죠. 

 

집에서 요리를 만들고 식사하는 일은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인가요?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나를 대변해요. 그런 의미에서 집밥은 내가 만드는 일상의 전통이고, 그 시간이 쌓여 나의 총합을 이룬다고 여겨요. 나를 돌보는 일이자, 내 주변을 보듬는 일인 거죠. 손수 만든 음식을 누군가와 함께 나눌 때면, 우리는 단지 먹을 것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 오가게 되니까요. 

 

 


Editor 박근영

Photography Kim C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