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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포르노그라피

In a Small Kitchen











한국의 전통 민간 신앙에는 집을 수호하는 가신이 등장한다. 성주, 삼신, 조왕 등의 가신은 가족의 번창을 돕고 액운으로부터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 중, 부엌신에 해당하는 조왕은 부녀자들이 부엌에서 섬기던 신으로 음식이 만들어지는 부엌이라는 공간을 정결하고 부정이 없도록 관장하고 있다.



식민 피지배와 전쟁을 겪으며 전통 문화와의 급격한 단절을 경험한 한국의 근현대 사회는 이러한 민간신앙의 의미마저 퇴색되어 왔다. 나 조차도 어렵사리 후사를 본 아무개씨를 두고서 사람들이 수군거릴 때, 삼신할매의 공을 치사하는 대화 정도로 민간신앙 속의 등장인물을 가늠했을 뿐.



그렇게 싱크대와 가스렌지, 환풍구가 하나로 연결된 현대식 조리대의 주방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을 당연한 듯 섭취하며 현대인으로써의 나날을 이어가다가, 독립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나만의 주방을 갖게 되었다.



1930년대 건축된 도심주거형 개량한옥에 딸린 두 평이 조금 못 미치는 주방. 개량형이라고는 하지만, 목조와 흙을 주재료로 집을 지었으므로 전통의 방식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한옥의 흔적은 대충 설치해 놓은 싱크대 상하부장에 몽땅 가려져 있었고, 대들보 아래로 애매하게 구획한 가벽으로 인해 빛이 전혀 들지 않는 소굴같은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미신에 대해서 콧방귀도 뀌지 않는 정신체계를 갖고 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공간에서는 조왕신의 섬김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본디 요리에 흥미를 느끼지도 못했거니와 맛을 평가조차 할 수 없는 괴랄한 음식이 탄생하기 일쑤. 무엇보다도 그리 넓지도 않은 주방을 가득 채우고 있던 싱크대가 눈엣 가시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홧김에 뜯어낸 싱크대 상부장 사이로 감춰 있던 한옥의 대들보가 위풍당당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3m에 못 미치는 기둥 하나에 의지해 저 무지막지한 상부장이 메달려 있었다니, 조왕신이 무던히도 애를 먹고 있었구나 싶은 단상이 스쳐갔다. 한층 공간감이 생긴 부엌을 두고 조금 더 나아가 소굴처럼 빛을 차단하고 있던 가벽을 철거했다. 그러자 주방 깊숙한 곳까지 밀려오는 태양의 잔광. 마치 나의 주방에도 서광이 드리우고 있음을 감지한 순간. 조금더 욕심을 부려 마음에 들지 않는 싱크대와 가스레인지를 비롯한 하부장을 몽땅 교체하기로 했다. 더불어 셀프 타일공사도 함께. 그렇게 탄생한 나만의 첫번 째 주방공간.





  • 가구 다리를 주문해 싱크대 높이를 맞추는 것 부터 시작해, 하부장 위의 인조 대리석 재단까지 손수 설계한 한옥의 주방 조리대.

  • 바닥 그리고 조리대와 맞 닿은 타일 작업도 인건비의 압박 때문에 직접 떠안을 수 밖에 없었다.

  • 때마침 광명 땅에 상륙한 IKEA 덕에 마음에 꼭 맞는 싱크볼과 수도를 갖출 수 있었다.

  • 상부장 대신 중간 보에 설치한 선반. 언젠가는 필요하지 싶어 구석에 방치해둔 나무 쪼가리가 스테인과 바니쉬를 입고 환골탈퇴했다.

  • 중간보에 이 집의 역사만큼이나 덧씌어진 페인트 자국은 무슨 수를 써도 벗겨내기 힘들더라. 공사를 마무리 짓고 아쉬운 마음에 옥의 티를 관망하자, 갑자기 밀려오는 미감. 세월의 풍파 속에서 벗겨지고 빛바랜 프레스코 벽화의 빈티지스러움이 목재가 드러난 한옥 주방의 모습과 너무도 잘 어우러지고 있음을 느꼈다.




  •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의 노즐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빈티지한 수도꼭지.
  • 선반위로 잡다하게 빼곡이 늘어선 살림살이.




  • 자연광 속에서 빛나는 아름다운 주방의 피사체. 




  • 조리대와 마주한 나머지 공간은 주방 도구들과 기기들의 수납장으로 변신. 단지 선반을 나열한 단순한 배치로 보여도 수개월에 걸쳐 완성한 후로 절대 변화가 없는, 가감 없는 구성이다.
  • 구석에 냉장고를 배치에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했다.
  • 도시가스 배관의 흔적 위로 고리를 걸어 오븐용 장갑을 메달아 두는 것으로.



  • 도시가스와 연결된 낡은 가스레인지를 버리고 2구짜리 소형 쿡탑을 설치했다.




  • 잘 드러나지도 않는 냉장고 측면은 자투리를 십분 활용해 마음에 드는 엽서나 메모들로 장식중.



  • 아름다운 태양빛이 스며들기 시작한 주방엔, 식물들이 생장을 거듭하게 되었다.
  • 싱그러운 초록 이파리들과 항시 조화를 꿈꾸는 나만의 주방.



  • 주방 공사후, 신기하게도 요리에 취미를 붙이게 된 나를 두고 조왕신이 강림하셨노라 우스갯 소리를 나누곤 한다.
  • 사소한 식재료 조차도 이곳, 나만의 주방에서는 아름다운 피사체로 거듭나고 있다.



  • 주방의 공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바닥 타일. 모양과 색감이 전부 상이하다.
  • 그 촉감이 너무나도 부드럽게 맨발을 감싸 안으며 조리대에서 보내는 시간을 깜빡 잊어버리게 한다.


  • 바닥 타일 다음으로 눈이 가는 주방 조리대의 가장자리 공간. 
  •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카페인 제조 기계는 왠지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해 준다. 






공간을 통해 거듭난 사소한 꿈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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