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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포르노그라피

Everday is Like Sunday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홍대 거리는 마이너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천국같은 곳이었다. 요란한 패션의 펑크족, 개성 충만한 예술가들, 왠지 멜랑콜리해 보이는 젊은이들로 가득차 있던 거리.  소위 Bripop-invasion이라 일컬어지는 영국발 팝 음악이 홍대 구석구석을 점령했던 것도 그 당시다. 흠모하는 뮤지션들의 밴드명을 간판으로 내건 펍들이 상가 건물 구석 구석에 둥지를 틀고 방황하는 영혼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던.


 Pub, The Smiths.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미장센을 상기시키는 인테리어. 음침한 조명아래 놓여있던 당구대. 스타일리시한 큐대와 당구공을 배경으로 서서히 퍼져가던 담배 연기. 어두운 조명 사이로 희미하게 비쳐 오던 모리세이와 밴드의 흑백사진들.


칵테일을 알지 못하던 시절의 고등학생이었던 당시의 나는 펍, 더 스미스에 들어가 Malibu (단지 Hole의 앨범 속 트랙 제목이었다는 이유로)를 한 잔 시켜 두고서 일탈을 즐겼다. 달콤한 코코넛 향이 코끝을 스쳐갔다. 말리부가 담긴 잔 아래로 검붉은 배경에 하얀 글씨로 ‘PUB – The Smiths’라고 세겨진 코스타가 놓여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칵테일 잔을 들어 한모금 들이키는 척 하며 다른 한손으로는 둥근 코스타를 테이블 가장자리로 가져와 테이블 아래의 무릎 언저리로 끌어 내렸다. 마시던 칵테일 잔을 코스타가 사라지고 없는 테이블 위로 내려 놓으며 태연한 척 주변을 관찰하던 나는 무릎 위의 그 스미스 코스타를 슬며시 가방에 쑤셔 넣었다. 펍안에는 There's a light that never goes out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특유의 우수로 가득 찬 The Smiths의 노래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지금까지도 플레이리스트에 항상 오르는 노래는 모리세이의 솔로 앨범에 실렸던 Everyday is like Sunday. 스미스 시절의 깊은 우수는 다소 누그러 진 듯 하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장조의 멜로디를 부유하는 곡이다. 음유시인이라 일컬어지는 모리세이의 시적인 가사 또한 이 곡의 백미.


모리세이는 작은 해안가 마을에서 이어지는 일상의 권태로움을 여느 일요일의 한가로운 풍경에 빗대어 노래한 것이다. 그러나 원작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영적인 울림의 기타소리를 시작으로 더더욱 소울풀한 모리세이의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나는 이미 지금, 이곳이 아닌 안개가 자욱한 해안가의 축축한 모래와 자갈을 자근자근 밟으며 서 있게 된다.


하늘은 온통 잿빛이며 해무로 인해 바다와 수평선의 경계는 아득하다. 안개로 자욱한 공간은 고요하기만 해, 빼곡한 수증기 알갱이들이 마구 부닥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시공간이 소멸되어 버린 듯한 낯설기만 한 이 공간에서 싸구려 쿠키와 느끼한 밀크티 한 잔을 나누고자 누군가 내 곁에 함께 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일상은 언제나 일요일을 꿈꾸고 있으므로 괜스레 낭만적으로 상황 이입에 몰입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이상한 것일까.





Morrissey. Everyday is Like Sunday

모리세이의 음악과 함께 즐기는 한가로운 일요일의 브런치




'즐거운 간식시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표방한 오뚜기사의 핫케이크 믹스. 도나스 가루와 함께 시판되었을 당시만 해도 꼬마 요리사들 사이에서 핫한 붐을 일으키며 절찬리에 판매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뒷면의 레시피에 표기된 '표면에 보글보글한 구멍이 생기면'이라는 현상이 실제로 일어나는가 하는 관건이 핫케이크 굽기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가르는 키 포인트.



예열된 팬 위에 얇게 펴 바른 핫케이크 믹스가 기포를 일으키며 서서히 익어가고 있다. 

마치 달의 분화구와 같은 모습을 하고서는. 



잘 구워진 핫케이크가 서 너장 접시에 쌓여 갈 때 즈음 예열 중인 커피머신의 상태를 체크



그라인더에 원두를 두어 스푼 넣은 뒤, 잠시 소음이 울리면.



곱게 갈린 커피가루가 그 특유의 향과 기운으로 후각을 사로잡는다. 

묵직한 템퍼를 움켜쥐고 분쇄 원두 위로 적당한 무게를 얹어 에스프레소를 추출



육중한 기계음이 울림과 동시에 포타필터 두 개의 주사구 아래로 흐르는 에스프레소.

공기+가스+기름+찌꺼기 등이 혼합되어 추출액 위로 둥둥 떠다니는 크레마야 말로 커피타임을 유혹하는 그 무언가.



아침과 점심을 가르는 태양빛이 처마끝으로 스며들자, 적당히 차가운 목넘김이 필요해졌다.

얼음물 위로 에스프레소를 부어 만든 아이스 아메리카노.



달콤하고 고소한 핫케익이 접시위로 그득이 쌓여갈 때 즈음,  모리세이 음악의 가사가 귓가에 맴돌기 시작한다.

"Share some greased tea with me"

 느끼한 밀크티 같은 차 대신 그리시한 휘핑크림 치는 것과 달콤한 블루베리 시럽 뚜껑을 열어 놓는 것도 잊지 않는다.



Everyday is like Sunday
“Win Yourself A Cheap Tray”



언제나 일요일 같기만 한 일상을 그리며.

달콤하고 느끼한 핫케이크 한 조각에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곁들이면.




Trudging slowly over wet sand
Back to the bench
Where your clothes were stolen


This is the coastal town
That they forgot to close down
Armageddon—come, Armageddon! Come, Armageddon! Come!


Everyday is like Sunday
Everyday is silent and grey


Hide on the promenade
Etch a postcard,
“How I dearly wish I was not here.”


In the seaside town
…that they forgot to bomb
Come! Come! Come—nuclear bomb!


Everyday is like Sunday
Everyday is silent and grey


Trudging back over pebbles and sand
And a strange dust lands on your hands
And on your face, on your face, on your face, on your face


Everyday is like Sunday
“Win Yourself A Cheap Tray”
Share some greased tea with me
Everyday is silent and g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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