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포르노그라피

나의 작은 정원









태양빛을 무한히 머금은 시간 속에 머무르고 있을 때면, 알 수 없는 질투심과 함께 방광염에 걸린 고양이마냥 어쩔 줄 몰라하곤 한다. 비록 자외선의 유해성을 염려하는 나 자신은 태양의 직사광에서 한 발치 떨어져 몸을 웅크리고 있다만.


우주의 암흑물질을 뚫고 기적적으로 이 푸른 행성의 대지로 내리쬐는 빛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광합성이 가능한 식물. 그 다음으로는  고양이. 그 다음엔 젖은 빨래감. 그리고, 포토그래퍼의 눈. 그 아래로 비등비등하게 태양빛을 그리워하는 나의 피부, 습기로 인해 눅눅해진 세간 살이 등등.


개량 한옥에는 으레 타일로 마감한 마당의 화장실 공간이 딸려 있다. 그리고 계단으로 연결된 화장실 윗 공간을 활용해 옥상을 가꾸곤 한다. 용마루를 기준으로 처마 끝으로 비스듬이 떨어지는 한옥의 지붕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공간이다. 한옥집에서는 애초에 드넓은 마당을 활용했을 지언정, 굳이 옥상이 필요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곳은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 속이 아니었던가. 좁은 골목이 흐르며 그 사이로 빼곡이 늘어선 개량 한옥은 나름의 변칙된 생활방식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계절이 변화함에 따라 가변적으로 처마 끝을 따라 한옥 내부공간으로 스며드는 태양광이 일상 생활에 적합한 빛의 양이라면, 동틀녘부터 시작해 서산으로 해가 저물기 까지 종일 온 사방에서 내리쬐는 태양의 빛은 옥상 차지다.  사람 두 명이 있으면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좁은 공간이지만, 시멘트와  방수제로 마감한 건물 외벽에 그저 태양광을 튕겨 보내 버리기에는 너무도 아쉬울 따름. 앞서 태양빛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는 것이 무엇이라 했던가, 바로 식물. 옥상 가드닝이 시작되었다.








1. 바질, basil







  • 식물을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 가드닝의 서막을 열어 준 고마운 허브.
  • 한해살이 풀로 생장조건만 얼추 맞으면 무한한 생장력을 보여준다.
  • 하얀색 꽃이 피기 시작하면 날벌레들이 오가며 수정을 도와준다.
  • 꽃대가 갈변하기 시작하면 검은색 씨가 영글기 시작하는데, 씨앗을 수확해 저장해 둘 수 있다.
  • 마치 이탈리아 국기의 삼색 가운데 하나인 녹색이 바로 이 바질잎의 색인양 이탈리아 요리에 매우 많이 사용된다.
  • 싱싱한 잎으로도 쓰지만, 말린 후레이크 향신료로도 활용 만점.



초여름, 꽃대가 올라오면서 하얀색 꽃들이 개화하기 시작한다.




계절이 변화하고, 가을에 접어들 무렵 바질잎의 씨방이 여물어가고 있다.

여전히 생장을 거듭하고 있는 바질꽃 사이를 탐닉중인 꿀벌.



눈내리는 겨울 속에 눈꽃을 머금은 바질꽃대.



옥상 정원에서 갓 따낸 한여름의 바질로 만든 카프레제_2016년의 여름.






2. 고수, coriander




  • 마치 동남아시아로 공간이동을 한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허브.
  • 이국적인 향기가 익숙하지 않은 토종 한국인의 입맛에는 흡사 비누를 삼키는 듯한 고통을 주기도.
  • 따라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허브 중 하나이지만, 범세계를 아우르며 각종 요리에 두루 쓰이는 향신료계의 감초라고나 할까.
  • 바질과 마찬가지로 한해살이 식물이며, 한여름에 꽃을 피운다.
  • 꽃이 피기 시작하면 이상하게도 진딧물이 가득 꼬이며, 이파리는 억세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새순이 돋아날 때, 신선한 잎을 톡톡 따서 활용하는 것이 키 포인트.
  • 꽃이 피고 날벌레가 달려드는 것으로 보아 수정이 이루어지기도 할 텐데, 아직까지 나의 옥상정원에서 고수의 씨를 받아낸 적은 없다. 씨앗은 다른 허브에 비해 꽤나 큼직한 편.




보호막으로 둘러싸인 듯한 둥근 고수씨앗. 봄을 맞이해 씨앗을 구해다가 파종하게 되었다. 

씨앗에서부터 고수 특유의 향취가 우러나오고 있었다. 우주를 품고 있는 마이크로한 세계의 경이로움이란.






해질녘 수확한 고수이파리를 양손에 들고서.





과카몰리에 빠질 수 없는 코리엔더.

옥상정원에서 채취한 신선한 고수잎 조각을 얹자 비로소 마무리되는 과카몰리, 또는 구아카몰(Guacamole).








3. 이탈리안 파슬리, Italian Parsley








  • 내 경험에 비추었을 때, 바질과 마찬가지로 파종부터 관리, 수확까지 난이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 매력적인 향취를 흠씬 풍기는 다른 허브들과 달리 무미하지만 은근히 강력한 식물 본연의 향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 따라서 고기요리를 비롯 샐러드 드레싱으로 활용도가 높다.
  • 뿌리로 월동이 가능한 다년생 허브다.
  • 짧은 지식에 허브는 죄다 한해살이인 줄로만 착각하고, 마치 당근같이 굵게 내리 뻗은 뿌리를 뽑아 내동댕이 친 결과, 2년째 꽃이 피고 결실을 맺는 풍경을 보지못했다.
  • 병충해는 크게 없었지만 호랑나비의 유충이 유독 파슬리를 좋아했다.



모든 사물이 입체적으로 빛나고 있던 어느 가을날, 파슬리에 내려 앉아 성장한 호랑나비의 유충. 

매달린 줄기의 잎은 모조리 먹어치웠는지 흔적조차 남아있질 않다.





한겨울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도 고요하고 느리게 생장을 지속하고 있었건만, 나의 무지로 인해 뿌리째 뽑혀 나가버린 1년생 파슬리.






샐러드와 함께 버무려 먹으면 은은하게 강한 풍미로 식욕을 돋우는 묵직한 향신료.









4. 루꼴라, Arugula(rucola,salad rocket etc..)








  • 다섯가지 맛을 낸다는 신묘한 채소로써, 고대 로마인들이 즐겨먹었다고 전해진다.
  • 한 가지로 정의되지 않는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미루었을 때,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이 루꼴라, 아르굴라, 로켓..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 일년생으로, 겨울을 제외한 계절 속에서 다작이 가능하다. 
  • 싱싱하게 피어오르는 어린잎을 이용해 요리에 활용하면 좋다. 자칫, 방치해 두었다가는 나비의 산란장이 되고 만다.
  • 씨를 받기 위한 루꼴라는 따로 방치해 두면 되는데, 매우 기다랗게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여리여리한 하이얀 꽃이 산발적으로 피어난다. 






해 질 무렵 옥상 정원에 올라 만개한 루꼴라 군락을 바라보며. 씨방이 제법 통통해 지고 있다.

마치 콩깎지 같이 생긴 씨방을 열어보니 채 덜익은 씨앗이 풋내를 풍겨온다.  







잘 여문 루꼴라의 씨앗. 각 씨앗마다 품고 있는 오묘한 색상에서 그 신묘한 맛들이 나오나?






봄이 한창일 때, 갓 수확한 루꼴라를 얹은 피자 한 입.










5. 그 밖의 수확물
, other harvests










  •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열리는 체리 토마토.

  • 산성의 토양질과 전용 비료만 주의한다면, 별 탈 없이 기를 수 있는 블루베리.
  • 한 달 안에 파종부터 수확까지 가능한 순무.
  • 아삭하고 달콤한 샐러드계의 여왕 시저.
  • 꽃이 피지 않으므로 병충해가 없다시피한 무결점의 무화과는 가을이 되면 수확이 가능하다.






6. 고양이를 위한 식물 캣닢, catnip







  • 캣닙이 cat+잎 이라는 국적 불명의 합성어 인 줄로만 알았다면.
  • 공교롭게도 <catnip>이라는 영단어가 존재하고 있다. 한국어의 ‘잎’과는 무관.
  • 모든 고양이들이 캣닢에 반응하는 것은 아니라고 (고양이의 약 1/3은 반응을 하지 않는다).
  • 다행인지, 나의 아메리칸 숏헤어 미셸과 시암캣 꼬망은 집사의 캣잎 농사를 헛되이 하지는 않았다.
  • 인간도 캣닢을 섭취할까? 차 또는 담배의 원료로 쓰인다고 한다.
  • 다년생으로 뿌리로 월동도 하고, 씨앗으로 번식도 한다.
  • 새까만 씨앗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매우 작다.





 캣닢 수확하는 날. 마치, 깨를 털 듯 마른 캣닢 꽃대를 움켜잡고 마구잡이로 흔들며 비벼준다.





참을 수 없는 캣닢의 유혹에 미셸이 성큼 다가와 앉았다.




까만 좁쌀같은 씨앗을 모아 유리병에 저장하면 한 해의 캣닢 수확 마무리. 

씨앗 하나로 발아한 캣닢이 이토록 무한하게 증식하다니, 자연의 신비란.









'일상 포르노그라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보카도 새우 부르스케타  (0) 2016.10.03
Michelle My Belle,  (0) 2016.09.28
진정한 후렌치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  (0) 2016.09.26
Everday is Like Sunday  (0) 2016.09.26
In a Small Kitchen  (0) 2016.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