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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포르노그라피

하지, 여름에 이르다

 

좀처럼 서산으로 저물 기미가 보이지 않는 태양이 지상에 14시간 이상이나 머물게 되는 이 시기가 오면 비로소 여름을 피부로 만끽하는가 싶다.  굳이 달력을 뒤적여가며 절기를 구분 짓지 않아도 이 세계의 단서들은 낮이 밤보다 길어지는 지금의 때를 어김없이 지목하고 있다. 모내기, 가뭄, 기우제, 감자 수확 등.

 

 

하지를 전후하여 수확한 농작물로 여름의 밥상은 연일 풍요로우며, 다시 공터가 된 경작지로는 깨, 콩 등의 모종을 알뜰하게 심어 가을 추수를 기약한 뒤, 곧 닥칠 장마를 기다린다. 하지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봄철에 싱그럽게 피어올라 초여름의 기운을 함뿍 먹은 텃밭 식물들은, 어느덧 갈무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한 포기 움켜쥐고 땅 속에서 흙덩이와 얼기설기 얽힌 뿌리를 흔들어 준 뒤, 과감하게 뽑아 올리면 손끝으로는  지하의 음습한 흙덩이를 움켜쥔 굵은 뿌리가 툭툭 끊어지는 감각이 전해 온다. 크게 한 번 힘을 쓰고 나면, 적당하게 영근 감자와 잔뿌리들이 가볍게 흙 속에서 우르르 뽑혀 올라오며 냉습한 땅 아래의 기운 또한 코끝을 스쳐간다.

 

햇볕의 직사광을 잠시나마 랑데부한 뒤, 곧 추려져 음지에서 보관될 하지의 햇감자는 투명한 껍질 사이로 뽀얗게 그 자태를 빛내고 있다.

 

 알이 너무 굵거나 자잘한 감자들은 뿌리째 딸려 올라오지 않고 흙 속에 파묻힌 채로 있다.  단단하게 응집된 흙더미를 호미질로 얼기설기 헤쳐 놓으면 뜻 밖의 수확이라도 얻은 냥 땅 속에 흩어진 감자들이 주워 담는 손맛을 자극한다. 하지에 들어서, 지천에 널린 햇감자를 당연한 듯 쌓아 놓으니 당분간 먹거리 걱정은 덜어낸 것만 같다.

 

 

 

오전의 감자 수확을 끝내고, 한숨 돌려 주위 둘러보니 눈이 호사를 누리고 있다. 식용 작물 재배를 목적으로 텃밭 한 귀퉁이를 오가며 가꾸고 있는 것을, 웬 들국화가 만개했다. 가만히 살피니 봄철에 부지런히 따먹다 방치해둔 쑥갓꽃이다.  

 

 

오전의 감자 수확을 끝내고, 한숨 돌려 주위 둘러보니 눈이 호사를 누리고 있다. 식용 작물 재배를 목적으로 텃밭 한 귀퉁이를 오가며 가꾸고 있는 것을, 웬 들국화가 만개했다. 가만히 살피니 봄철에 부지런히 따먹다 방치해둔 쑥갓꽃이다.  

 

국화과에 속하는 이 종은 지중해 연안과 동아시아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하니, 실제로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한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한 식재료이다. 그러나 유럽 등지에서는 그 특유의 쏘아 붙이는 향 탓에 식용이 아니라 관상용으로 주로 가꾼다고 한다.   

 

'crown daisy'라는 애칭 또한 갖고 있는 이 꽃은 황금빛으로 꽃밥을 가득 채우고서, 하얗게 피어오른 꽃잎을 황금빛으로 물 들여 간 듯한 모양새가 화관의 찬란함과  닿아 있다.

 

 

 

수수밭의 이미지는 미학적인 감각을 자극하는지, 아니면 강한 생명력 덕분에 토양을 가리지 않고 솟아오르기 때문인지 '이야기'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언뜻 떠오르는 것은 장예모 감독의 '붉은 수수밭'과 영화 '인터 스텔라'의 광활한 옥수수밭.  

 

전자는 드넓게 펼쳐진 붉은 수수밭을 배경으로 중화의 전통이자 상징인 붉은 심상을 인간 본연의 원초적인 본질과 선명하게 대비시킨 수작이며, 인터스텔라의 척박한 옥수수밭은 인류 생존을 위한 최후의 보루로써 그 억센 생명력을 드러내 보였다.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옥수수밭의 이미지는  과학기술이 첨단을 달리는 이 시대에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제하는 것으로써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철학을 시사해 주기도.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수수의 이미지를 마주하고 있자니 '식물'이라는 단어가 거리낌 없이 떠오른다. 식물의 개념에 근접해 있는 듯, 더할 나위 없이 푸르고 산듯하다. 일정한 간격으로 곧게 뻗은 잎맥은 태양빛에 투과되어 반투명의 초록빛을 발하고 있다.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 커다란 잎사귀들은 초여름의 미풍에 적당히 바스락이며 단순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식물의 매력에 동화되어 다시 발길을 옮긴 곳은 쌈채소 군락지. 본격적인 여름철에 들어서자, 생장의 끝자락에서  꽃이 피고 씨가 맺혀 간다. 싹이 올라오는 족족 무던히도 따내었던지 밑동은 앙상한 채 여리여리한 줄기와 햇볕에 장시간 노출되어 조직이 퍽 질겨진 잎들만이 꽃대를 지탱하고 있다. 한 해살이 풀들은 다년생인 것 보다 확연히 그 화려한 자태로 시선을 끄는 경향이 있다. 

 

 

호박꽃에 정신을 빼앗기다 보니 감자를 캐던 오전의 일들은 저만치 물러나 있는 것 같다. 벌들이 수정을 이루어 주면, 대롱 끝에 매달릴 통통한 호박이나 맛보기로 하고 어서 감자 박스나 추스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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