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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프렌치 낫 프렌치_French not French

 

 

 

파리는 '화려체'로, 사랑은 '만연체'로- 『프렌치 낫 프렌치』

 

 

이 책은 부부인 두 저자가 번갈아 이야기를 나누어 쓴 에세이다.

<일러두기>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1장과 3장은 남편이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로 작성하였고, 2장 4장은 아내 관점으로 작성한 여행기다. 

 

공동 저자의 눈을 따라가며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구경해보자.

먼저, 저자는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 어느 하나 허투루 보아 넘기지 않는다.

 

그들의 눈에 포착된 파리, 남다르다.

보통의 여행자 눈에 들어온 파리와는 결이 다르다.

그러니 독자들은 이 책 한권으로 파리를, 프랑스를 신나게 구경할 수 있는 것이다,

 

파리는 화려체!

 

문장론을 공부할 때, 문체의 종류 중 하나 ‘화려체’라는 것을 배운 적이 있다,

 

화려체, 문체의 한 종류로서 다양한 꾸밈말을 풍부하게 사용해 생동감과 음악성을 주는 문체를 말한다는 것, 이것은 화려한 꾸밈말이 많기에 만연체와 함께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교과서에서 보던 문장을 여기에서 만나게 된다.

저자의 문장이 화려체로 여기저기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파리를 이야기할 때는 화려한 문장이 현란하게 여기저기 빛을 발하고 있다.

 

달리고 달려도 광활한 대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속도감이 증가할수록 오히려 대지가 확장되어 온다. 고대 신화 속에 존재할 법한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온다. 굳어있던 상상력이 유연하게 펼쳐지며 흙더미가 살아 움직이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언제부터 땅에 뿌리를 내렸는지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플라타너스 군락이 넘실댄다. 모네의 햇살, 르누아르의 나뭇잎, 고흐의 붓 터치가 흐른다. (134쪽)

 

파리 북역의 첫 숙소가 공동 주택의 공공성이 활성화된 곳이었다면, 이번 숙소는 도회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익명성과 타자성이 철저하게 분리된 외딴섬 같았다. 조금 더 과장을 보태면 온갖 무용담과 역사적 사건이 혼재하는 19세기 파리의 ‘벨 에포크’가 벽장 뒤에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167쪽)

 

 

그건 왜일까?

 

저자(부부 모두 그렇다)의 감각은 남다른 데가 있다. 감각을 최대한 살려서 사물을 바라본다.

 

저자가 쓰는 말 중에 감각을 수반하는 단어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흔히 놓치는 것들, 생각하지도 못하는 감각에 관한 감각을 저자는 특별하게 지니고 있다.

 

이런 문장을 읽어보면 저자의 그런 특별한 감각에 대한 감각, 느낄 수 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멈춰 섰을 때, 소실점이 보이는 골목 깊숙한 어귀에서 샤를 보들레르가 비틀거리며 욕설을 퍼부을 것만 같은 환상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86쪽)

 

‘소실점이 보이는 골목’, 저자의 눈에는 그런 소실점이 보이는 것이다. 원근법과 소실점이란 용어를 책에서 주어 들은 나는 저자의 그런 감각이 신기하다. 마치 별세계에서 온 사람 같다.

 

청각과 시각을 아우르는 문장, 또한 신기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캐리어 바퀴와 굴곡진 돌바닥 사이의 묵직한 마찰음이 파리의 밤하늘을 수놓는다. (86쪽)

 

파리의 똑같은 길을 캐리어 끌고 가며 나던 마찰음을 그저 ‘드르륵, 드르륵’ 이란 초등학교 수준의 의성어로만 기억하고 있는 나에게, 저자는 분명 별세계 사람이다.

 

해서 이런 감각적 감각 용어, 음미하면서 읽었다.

 

고속 열차 차창 밖으로 동틀 무렵의 흐르는 풍경을 왼편에 두고 목적지의 방향성을 가늠해본다. (133쪽)

 

달리고 달려도 광활한 대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속도감이 증가할수록 오히려 대지가 확장되어 온다. (134쪽)

 

무슈 필리프의 생활 터전과 양조장을 겸한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그는 공간감을 상실한 우리에게 샤슬이라는 브르고뉴와 보졸레의 중간쯤 되는 지역이라며 다정하고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141쪽)

 

나의 시선은 황혼의 시간 속에 젖어가는 한적한 마을의 풍취, .........포도밭에서 캐어 올린 암모나이트, 깨어진 유리창으로 아무렇게나 덧댄 테이프 조각,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고 있는 공감각에 머물렀다. (141쪽)

 

사랑은 만연체로 !

 

저자는 또다른 저자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낸다.

서간문으로 쓰여진 글이 1장과 3장에 실려있는데, 대상이 아내인 장보현이다.

 

1장에서 문장 하나 읽어보자.

 

하루를 꼬박 못 채우고 발베니에르를 떠나가던 길, 긴 이별을 고하며 돌아선 뒤안길에 사이프러스 나무가 산등성이를 제치고 하늘을 향해 솟아있더라. 반 고흐의 활활 타오르는 그 사이프러스 나무 말이야. (52쪽)

 

부부 사이에 반 고흐는 공통의 인물이다. 반 고흐가 그린 사이프러스는 그래서 화제에 오른다. 그런 화제를 꺼내는데, 간결하게 단어만 연결한다는 것은 사랑에 대한 모독이다.

 

해서 그의 문장은 더욱더 만연체가 된다. 4장에서 만난 글이다.

 

비 갠 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렀고 미세먼지 농도는 한 자릿수를 가리켰지. 나는 숨을 크게 내쉬며 파리 시내 중심가를 거닐었어. 방돔 광장에 도착했을 땐 겨울의 태양은 저녁나절 금세 자취를 감추었고, 한 달의 공백 끝에 다시 태어난 초승달이 새초롬한 맑은 빛을 머금고 장마로 얼룩진 도시를 감싸 안았어. 얼마나 초현실적인 풍경이었냐면 마그리트의 인디고블루가 흩뿌려진 낮과 밤의 경계에서 가로등 속 짙은 오렌지 빛깔의 나트륨 불빛이 하나둘씩 밝아오는 거야. 낮도 밤도 아닌, 빛이 완연히 걷힌 것도 어둠이 내린 것도 아닌 상태, 나는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기분에 한껏 들떴지. (213쪽)

 

단어 어느 것 하나 홀로 나타나지 않는다. 반드시 무엇인가 앞세우거나, 끌고 나타난다. 그런 단어들은 부부 그들만의 언어인양, 많은 사랑의 암호가 새겨있고, 또 슬며시 나타나기도 한다.

 

'초승달'이란 단어는 어떤가? 그들 부부에게 분명 초승달은 어떤 추억이 있을 것이다. 해서 초승달은 과학적인 단어가 아니라, 사랑의 언어다.

‘한 달의 공백 끝에 다시 태어난 초승달’

이런 표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고,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또 초승달, 이렇게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세태의 향기가 모두 씻겨 내려간 말간 밤하늘에 보송한 얼굴을 드리운 초승달처럼 말이야. (213쪽)

 

 

위의 문장 바로 다음에 나오는 문장에 있는 초승달이다.

대체 초승달에 무슨 사연이 있기에, 초승달은 보송한 얼굴을 하고 다시 태어났단 말인가

 

그래서 이 부분은 부부 두 사람의 연애편지다.

그들의 사랑을 담고 있는 농밀한 러브 레터가 분명하다.

 

다시이 책은

 

아름다운 파리를 두 부부가 마음껏 음미하는 글을 만나는 에세이집, 여기엔 사진작가인 남편이 작가의 시선으로 보고 풍광을 골라 찍은 사진들도 함께 있어, 운치를 더한다.

 

모처럼, 파리를 파리답게 보여주는 글과 사진, 본다.

 

비오는 날 저자가 걸어서 몽마르트르 언덕에 도착했을 땐, 비가 제법 잦아들었다.

 

관광지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겨울의 스산한 풍경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던 것은 내가 그곳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 도착한 것도 마침 겨울이었으니.

 

그렇게 나는 저자를 따라 파리를, 내 추억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언덕을 오를수록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목과 습한 대지 속에서 더욱 푸르게 빛나는 상록수가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209쪽)

 

그랬지,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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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화려체’로, 사랑은 ‘만연체’로 - 『프렌치 낫 프렌치』

파리는 ‘화려체’로, 사랑은 ‘만연체’로 - 『프렌치 낫 프렌치』 이 책은? 이 책 『프렌치 낫 프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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