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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포르노그라피

가을의 오브제

 

어느덧 가을의 마지막 절기인 상강에 접어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기 시작하는 시기죠. 시골 들녘의 풍경은 추수를 마무리 짓고 월동 준비로 분주합니다. 쭉정이만 남은 나뭇가지가 쌓여가고, 황금빛 볏단은 새하얀 비닐 속에 돌돌 말린 채 마치 오브제 같이 논 한가운데서 겨울을 보내죠. 멀리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마시멜로 같거든요.

 

 

옥상 정원의 허브들도 계절의 변화를 하나둘씩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씨앗을 맺은 씨방은 건조한 가을의 대기 속에서 갈변해가고, 노랗고 붉게 그 잎을 물들여가죠. 생명력이 강한 토마토나 월동을 하는 허브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듯 꽃을 피우고 푸른 잎을 새로 틔어내기도 해요. 그래 봤자 본격적인 겨울이 찾아오기 전까지 유효한 이야기겠지만요.    

 

 

 씨앗을 가득 머금은 허브 줄기를 꺾어 화병에 꽃아 두거나 벽에 거꾸로 매달아 두면 그대로 오브제가 돼요. 씨앗은 이듬해 봄에 파종할 수도 있고요.

 

 

 

모양과 맛도 제각각인 늦가을의 호박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장식이 됩니다.

 

 

 

 

 먹기 아까울 정도로 어여쁜 작은 호박은 훌륭한 초꽂이가 됩니다. 다행스럽게도 저 앙증맞은 호박은 그리 훌륭한 맛은 아니랍니다.

 

 

 

 

 

 추수가 끝나고 수확의 기쁨과 함께 먹거리가 나날이 쌓여가던 가을이었습니다. 정신없이 바쁘던 친구 K가 짬을 내어 집을 방문한 날이었죠. 식탁 위로는 탐스러운 햇과일과 가을 작물이 한아름 놓여있었고, 옥상 정원은 뜨거운 여름의 여운을 품은 잎사귀들로 무성했습니다.

 

 K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허브들 사이에서 헝클어진 토마토 덩굴을 오브제로 선택했습니다. 저는 그 선택이 의아하기도 했어요. 토마토 줄기는 의례히 관상용이 아니었으니까요. 프랑스에서 꽃을 공부한 K는 휴일마다 푸성귀 열매와 꽃이 달린 토마토 줄기를 꺾어 팔던 파리 시내의 한 할머니를 회상했습니다. K의 선택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미감이었던 것이죠. 저는 토마토의 상큼한 과즙을 탐하느라 그 노란 꽃과 푸르고 붉은 열매의 아름다움을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라자냐가 완성되어 갈 동안 K는 자신이 갖고 온 호박에 구멍을 뚫고 초를 꽂기 시작했어요. 전 이런 훌륭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생각해 내었는지 감탄사를 연발했더니 핀터레스트 pinterest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고 태연스럽게 말하던걸요. 아무렴, 영감의 원천은 도처에 만발해 있습니다.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체화해 가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겠지만요.

 

옥상 정원에서 꺾어 내려온 토마토 줄기의 생채기 틈에서 알싸한 토마토의 풋내가 풍겼습니다. 식탁 위에 놓인 오브제와 음식이 토마토 줄기를 휘감고 더욱 돋보이는 듯해요. 아니 정말로요. 토마토 잎사귀를 가만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던가요? 줄기마다 삐죽삐죽 갈라져 나온 잎사귀가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간을 채워주는 완벽함 그 자체였다고나 할까요. 한여름 무성하게 성장을 거듭할 때, 줄기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곁순을 성가시게만 여겨왔던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더불어 열매만을 탐했던 시야에서 벗어나 모든 식물과 농작물을 가만히 바라보는 계기도 되었죠.

 

 가을을 머금은 펌킨 촛대에 불을 붙이고 식탁에 모여 앉습니다. 물론, 미장센 밖의 식탁 위로는 호박도 저만치 물러나 있고, 토마토 줄기도 흐르고 있지 않겠지만요.

 

 깊어가는 가을. 가을의 식탁 위로 도란도란 모여 온기를 나눕니다. 마른 허브 잎사귀를 따듯한 물에 띄어 차를 우려내요. 허브차의 상쾌한 향을 음미하며 움츠러든 몸을 녹여봅니다. 흘러가는 가을의 끝자락을 타고 다시 돌아온 올해의 겨울도 무사히 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