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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A

도시생활자의 식탁_북토크 후기

 

여름이 본격적으로 도래할 무렵, 광화문 한가운데 위치한 세화 미술관에서 <도시생활자의 식탁> 북 토크가 열렸습니다. 또 다른 책 작업을 위해 유럽에서 한 달간 머무르고 돌아온 터라 북 토크가 마치 환송회처럼 느껴지는 저녁이었죠!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워를 뚫고 참석해 주신 애독자 여러분들을 비로소 만날 수 있었던 황송한 순간이었습니다. 

 

 

 

광화문의 랜드마크 해머링맨(Hammering Man, Jonathan Borofsky, 2002)의 엄호 아래 인왕산과 북악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세화 미술관>의 두 번째 도시 기획전 <Phantom City>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도시생활자의 식탁>을 낭독하게 되었어요.

 

 

 


 

 

Q : 작가님, 책에 대해 잘 알고 계신 분들도 있겠지만 내용을 잘 모르고 오신 분들도 계실 듯 한 데요, <도시생활자의 식탁> 책에 대해 작가님께서 직접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글들, 그리고 레시피는 어떻게 글로 남기기 시작하시게 되었나요?

 

 

A : 간략하게 소개를 하면, 레시피북 보다 에세이에 가까운 책입니다. 요리에 관한 에세이요. 도시에서 삶을 이어가면서 매일 펼쳐지는 식탁 위의 미장센을 꾸준히 기록해 나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시생활자의 식탁>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레시피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접하는 제철 식재료와 옥상 정원의 허브로 음식을 만들어 가는 과정, 그리고 음식에 관한 추억, 주관적인 맛에 대한 소견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Q : 작가님께선 요리를 언제부터 이렇게 ‘잘’ 하셨을까요? 원래 요리하는 걸 좋아하셨나요?  요리의 어떤 점을 특히 좋아하시나요?

 

A : 저는 원래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지금도 여전히 꿈을 붙들고 살지만, 완결되지 않는 습작을 붙잡고 갈팔질팡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남편의 제안으로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작가 신청을 하게 되었어요. 지속적으로 올릴 수 있는 콘텐츠를 고민하던 중, 가장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풀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가 제철음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렇게 24절기를 배경으로 제철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꾸준히 풀어나가며 글쓰기 연습은 물론,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시행착오 또한 이어나가게 된 거죠. 

 

 

 

 

 

 

 

Q : 도시에서의 식생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하기보다 편리하게 식생활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작가님 책을 보면 정원을 가꾸고 거기에서 직접 음식을 만드시는 일이 일상적으로 보여요. 도시생활자로서 이와 같은 생활을 꾸려나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 :  고백하자면, 저는 요리를 좋아하거나 열광하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먹고 마시는 행위에 투자하는 시간을 쪼개 책을 한 권 더 읽고, 영화를 한 편 더 보는 것을 우선시 여겼으니까요.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일상성을 고민하던 중에 제철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즐기게 되었다고 했잖아요. 모든 것은 통한다고, 그렇게 계절 따라 수확된 식재료를 유심히 들여다 보고 맛의 궁합을 고민하다 보니 이건 또 다른 세계인 거예요. 그리고 그 세계가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요리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행위였고 이것을 글로 풀어내다 보니 애초에 제 업보와도 같았던 글쓰기와도 일맥상통해있던 거죠. 어쩌면 요리라는 것이 확장성이 더 클 수도 있어요. 너무 당연시 여겨서 잘 느끼지 못하지만. 요리를 통해 누군가와 동화되고 공감하고, 치유해가는 과정이 훨씬 더 직관적이고 솔직하잖아요. 

 

 옥상 정원을 가꾸는 건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어요. 그런데 해를 넘길수록 심는 허브의 종류도 점점 다양해지고, 계절별로 파종하는 씨앗의 종류도 하나둘씩 알아가게 된 거예요. 맛과 향이 제각각인 허브의 쓰임새가 식재료에 따라 달라지는 점 또한 매력적이었고요. 무엇보다 해를 거듭하면서 충직하게 계절 따라 새로 돋아나는 식물을 만나는 일이 일상의 기쁨으로 다가왔어요. 마치 별 일 없이 지속되는 저의 일상과도 닮아 있었고요. 자칫 너무 관심을 많이 주면 과습으로 뿌리가 썩어 죽어버리고, 그렇다고 방치하면 고사해 버리는 식물들을 바라보면서 적당한 무관심과 마음속의 진심된 애정, 자연스러운 태양빛과 바람과 빗물에 생을 지속해가는 또 하나의 작은 세계에 제 일상이 조금은 풍요로워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정원을 가꾼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단 한 뼘의 땅이라고 할 지라도요. 

 

여기 참석하신 분들 중에서는 고향이 ‘서울’인 분도 계시겠지만, 제 경험치의 8할은 시골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 달간 유럽에 머무르면서 사랑하는 고국과 떨어져 지냈었는데요. 지난주에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한국의 모습이 더욱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20살 이전의 시골에서 지낸 경험이 이 도시를 더욱 객관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시골을 대하는 객관적인 안목 또한요.  경계에 걸쳐 어떤 대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일상을 환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본론으로 돌아가, 도시의 편리함과 인적 네트워크, 풍부한 문화 예술 인프라 등의 수혜를 잔뜩 누리면서도 시골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공허함이 주는 영감과 재생의 의지를 늘 조화롭게 줄타기하는 제 자신을 마주하곤 합니다. 

 

 

 

 

Q : 여름을 좋아하신다는 말을 책에서 보았는데, 저의 느낌 탓인지 이 책 자체도 여름에 참 잘 어울리는 책인 것 같아요. 여름을 좋아하시는 이유를 알려주세요.

 

A : 그건, 제가 여름에 태어났기 때문인 것 같네요...그것도 여름의 한가운데요. 여름은 해가 길어서 좋아요. 식재료가 풍부한 것도 좋고요. 무더위에 지친 나른한 몸으로 별생각 없이 쉬는 것도 좋아요. 

 

 

 

 

 

Q : 지금도 계속 브런치에 새로운 글을 쓰고 계시지만, 지금 이 순간에 새롭게 에세이를 쓴다면 어떤 음식으로 쓰고 싶으세요?

 

 

A : 유럽에서 나는 생소한 제철 식재료와 허브를 소개하고 싶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웬만하면 재배가 다 가능하더라고요. 우리의 식탁이 조금은 더 풍성해질 수 있도록 말이에요. 

 

 

 

 

 

 

Q : 사진으로만 봤지만 집이 너무 멋집니다. 어떻게 이 곳에 살게 되셨어요?

 

A : 저 또한 평범한 도시생활자들과 마찬가지로 젊은 시절을 좁은 원룸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다 작업실을 겸해 조금 더 큰 공간을 찾게 되었고 어린 시절 한옥에 살았던 기억을 떠올려 광화문 근처 서촌의 한옥을 물색하게 되었죠. 그 당시, 월세가 저렴한 대신 허름하고 낡은 집이었지만 손수 집을 고치며 더불어 저의 삶 또한 변화시켜준 아주 고마운 집이에요. 공간의 양상은 인간의 행태를 규정한다고 하잖아요. 언제까지 지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지내는 동안은 행복하게 지내려고요. 

 

 

Q : 이미 살짝 앞에서 이야기가 나왔지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집에서 다 함께 살고 계신 가족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 김진호 작가_ 저희 집의 실질적인 가장으로써, 열심히 살고 계신 분입니다. 최근 4월에 꿈에 그리던 첫 개인 사진전을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사진과 영상을 매개로 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고요. 제 책에 들어간 요리 사진은 물론, 타르트와 케이크 등의 섬세한 데코레이션을 완성할 만큼 야무진 손재주를 지녔어요. 요리의 맛을 완성 짓는 기미상궁 역할을 독톡히 해내죠.

 

미셸_한옥집의 실질적인 터줏대감으로, 가장 오랜 시간 한옥집을 지킨 작은 존재입니다. 호랑이 같은 용맹함과 기개를 타고났지만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멋있는 고양이입니다.

 

꼬망_미셸이 새벽 4시마다 잠을 깨우는 만행을 지속하자, 친구를 찾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정릉에서 데려온 꼬망이는 작고 나약한 존재이지만 왠지 모를 당당함과 반짝이는 푸룬 눈빛으로 심장 공격을 일삼고 있습니다. 

 

 

 

Q :  글도 좋지만 사진과 잘 어우러져서 더욱 근사한 일상의 모습이 완성되는 듯한데, 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영화나 광고의 콘티처럼 김진호 작가님과 어떤 장면을 찍을지 미리 상의를 하시나요? 아니면 현장에서 진행되나요? 작업 과정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A :  저희는 모든 것을 즉흥적으로 하는 편입니다. 남편은 계획을 세우고 하는 걸 선호하지만 제가 그게 잘 안돼서...예를 들자면, 제철을 맞은 복숭아가 한 박스가 있어요. 그럼, 우선 하루 이틀은 실컷 먹는단 말이에요. 그러다가 하나둘씩 무르기 시작하면 조바심이 들기 시작해요. 그리고 마침 남편이 집에 있어요. 그럼 그날 오전에 남편에게 "점심을 먹고 복숭아 요리를 좀 하자" 고 통보하는 식이에요. 그럼 저는 복숭아 잼을 만들고, 복숭아 타르트를 굽고, 남편은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팔로잉하는 거고요. 

 

 

 

Q : 어떤 요리를 할지, 미리 생각해두는 편인가요? 아니면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편인가요? 다른 음식들과의 조화가 있나요?

 

A : 우선 제철 식재료에 가장 큰 비중을 두는 편이에요. 그 계절에 맛보는 신선한 수확물만큼 맛있는 건 없으니까요! 재료를 선택한 뒤에는 우선 집에 있거나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부재료들을 떠올려 맛의 조합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레시피의 경우는 인터넷 정보를 주료 활용하지만, 아이디어를 얻는 정도고 제 스타일대로 재가공하는 하는 편을 선호해요. 어딘가에서 맛본 음식의 인상적이었던 맛을 기억해 두었다가 기회가 되면 무작정 시도해 보기도 하고요, 따라 해 보고 싶은 요리가 있으면 메모해 두었다가 식재료를 구하게 되면 해먹기도 해요. 반대로 마리아쥬나 페어링도 중요하게 생각해 좋은 술이나 음료가 있으면 그에 어울리는 요리를 하기도 하고요. 딱히 경계는 없어요. 한식에 와인도 잘 어울리고, 위스키에 곶감이나 부각도 찰떡궁합이거든요. 맛의 의외성을 알아가는 과정은 늘 새롭고 재밌습니다. 

 

Q : 이미 이 글에서 어느 정도 보이는 듯 하지만, 음식을 즐길 때 가장 중요한 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A : 사람과 사랑입니다. 음식에 깃든 정성과 그 음식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죠.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트 러셀의 말로 대신할게요. “책, 와인, 안주, 좋은 날씨, 약간의 음악, 결함 없는 행복 그 자체다.”

 

 

 

 

 

Q : 신간이 곧 나온다고 들었어요. 간략하게 책 소개 부탁드려도 될까요. 

 

A : <도시생활자의 식탁>이 저의 일상 중 요리에 집중된 책이라면, 지금 준비 중인 다음 책은 24절기에 맞춰 일상을 엮어가는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관한 내용입니다. 때에 맞춰해야 할 일을 하고 계절이 변화하면서 느끼는 단상을 사진과 에세이로 풀어낸 책이에요. 10월 출간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Q : 마지막으로 작가님, 청중분들께 한 말씀만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A : 오늘 참석해 주신 분들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에요. 도시라는 이미지는 그동안 삭막하고 어두우며 차가운, 네거티브한 쪽으로 표현이 되어온 경향이 있어요.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는 틈과 사람 사이의 온기 또한 늘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 온기를 제대로 확인하고 느끼고 나눌 수 있는 매개가 저는 요리라고 생각을 했고요. <도시생활자의 식탁>은 그런 의미의 연장 선상에서 그 온기를 나누는 책입니다. 이 낭독회가 끝나고 모두들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서, 앞으로 이어나갈 여러분들의 식탁에 따듯한 온기가 가득했으면 합니다.